6월, 호국 보훈의 달 이달의 독립운동가. 안경근, 이덕주, 최흥식 선생

2022. 6. 4. 23:03휴식과 보충

호국 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두번째

2022년 6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분들을 알아보겠습니다.

 

□ 국가보훈처는 광복회,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

안경근·이덕주·최흥식 선생을 2022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.
 

- 세분 모두 한인 애국단 출신으로, 한인애국단은 김구선생이 임시정부에서 

독립운동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결성한 단체입니다. 

이덕주, 최흥식 선생의 의거는 실패했지만 독립운동의 의지는 많은 곳에 알린 중요한 의거였습니다.

*  이덕주 선생은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나 24살에 한인애국단에 가입.  

 - 1924년 최초의 사회주의 여성단체, 여성동우회를 조직 중심인물로 활약 
 - 조선총독 처단 의거 제안을 수락,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리고/임시정부 재정확보에 도움을 주고자함.

 - 유진식과 국내에 파견되었으나 신천 도착후부터 예의주시하던 신천경찰에게 붙잡혀 실패함

 - 1932년 7월 해주지방법원에서 소위 ‘살인예비, 치안유지법, 총포화약류취체령 위반’으로 징역 7년형을

언도받았으나 불복하여 공소를 제기하고, 평양형무소 이감후 1935년 2월 12일까지 옥고를 치렀다. 

<이덕주 선생 공판기사>


 최흥식 선생은 서울에서 태어나 어릴적에 부모를 여의고 형과 함께 지냄
 - 가정형편으로 학업을 중단, 20살에 독립운동이라는 큰 포부를 가지고 중국 망명 결심

 - 단장 김구를 만나 특무작전을 제안(1932년 2월경)

 -  조선총독 처단 임무가 적힌 한인애국단 입단 선서문을 목에 걸고 안공근의 집에서 사진을 찍음

 - 상해에서 대련으로 출발할 때 관동군 사령관등을 처단하라는 비밀 지령을 받음
 - 거사일 이전인 1932년 5월 24일, 최흥식이 일경에 붙잡히면서 결국 추진되지 못함

 - 대련법원에서 징역 10년 형을 판결받고 여순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. 

최홍식 선생

 

 

안경근 선생은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남(안중근 의사의 4촌 동생으로 안태민<安泰敏>의 장남으로 태어남

 - 1918년 가족 모두 국내에 남겨둔 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, 독립운동에 투신

 - 1931년 말 한인애국단이 결성되자 단원으로 참여했으나 직접적인 활동은 확인되지 않음

 -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거 후 단장 김구선생을 보필하며 인연을 이어나감. 
 - 1934년 2월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 내, 한인 특별반의 생도계를 맡음

 - ‘제2, 제3의 한인애국단원 양성, 김구 직계 가족의 연락・소통, 김구 선생의  신변 경호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임

 - 또한 항일 특무활동도 병행, 1933년 5월 남화한인청년연맹 단원들과 협력, 일제 밀정 이종홍을 처단

 - 6・25전쟁이 발발 이후 대구에서 반독재・통일운동을 위해 활동지속, 1978년 양주군 장흥면 일영리에서 서거  

안경근 선생

 

내용을 작성하자면 한량없으나, 요약해서 작성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.

훌륭하신 독립운동가분들을 잊지 않기위한 시간을 가지게 되어 감사했습니다.

 

* 정부에서는

 - 1977년 안경근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

 - 1990년 이덕주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

 - 1991년 최홍식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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